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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중가주해병대전우회
중가주 애국선열 추모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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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6주년 광복절 경축식과 제30주년 중가주 애국 선열 추모식을 올리면서 지난 30년의 세월속에서 이런일 저런 모습을 생각 하며 사진과 함께 더듬어 봅니다. 지난세월에 감사합니다.

2021년 제 76주년 광복절 경축식 및 제 30주년
중가주 애국선열 추모식을 올리면서

중가주 해병대전우회(회장 김명수)와 중가주(리들리, 다뉴바) 애국선열 추모위원회(회장 김명수)는 매년 광복절과 메모리얼데이에 기념식과 함께 애국선열을 위한 추모식을 중가주 리들리시 소재 리들리 공원묘역에서 개최하고 있습니다. 올해로 추모식은 제30주년을 맞고 있습니다. 2017년부터 대한민국 국가보훈처와 주 샌프란시스코 총영사관이 특별후원으로 함께 합니다.

 

이곳 묘소에 영면하신 초기 이민 선열들은 1905년경부터 낯선 아메리카 땅 이곳 중가주 과일 농장에서 어렵고 고달픈 힘든 생활속에서도 조국을 사랑하고 독립을 위하여 서로가 절약 협력하여 미주지역에서 제일 많은 60%의 독립자금을 모아 상하이 임시정부와 대한독립군에 도움을 준 분들입니다. 이런분들이 진정 조국을 사랑하시고 걱정하신 숨은 애국지사가 아니겠습니까. 또한 이곳은 여름철 농번기에는 화씨100-110도 이상의 무더위가 계속 되는곳이기도 합니다. 

  

우리 모두가 지금 할일은 경건한 마음으로 이곳에 영면하신 선열들의 명복을 기원해 드리는 것입니다. 현재 이곳 리들리 묘역에는 146위와 인근 다뉴바묘역(리들리에서 약 7마일 거리)에 45위가 안장되어 있습니다.

 

미주한인의 이민의 역사는 120여년이 넘지만 1902년 12월22일 당시 112명의 최초의 공식적인 단체이민이 제물포항(현재 인천)을 출발해 1903년 1월13일 하와이 호놀룰루항구에 도착한 날을 기념해 매년 ‘1월13일'을 ‘미주한인의 날' (Korean American Day)로 기념하고 있습니다.

 

중가주 해병대전우회의 김명수 회장이 이곳에 영면한 이민 선열들에 대한 추모행사를 개최하게 된 동기는 1992년 2월 어느날 우연히 이곳에서 한 지인을 만나 이곳 묘지에 잠들고 있는 한인 선조들의 역사를 알게 되면서 시작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이 묘역에 한인 선조들이 몇십명정도에 불과할 것이라는 이야기와는 달리 3회에 걸친 현장 답사를 통해 어렵게 명단을 작성을 한 결과 리들리 묘역에 146위, 다뉴바에 45위 모두 191위의 선열들이 영면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더 놀라운 사실은 1992년 그때까지 역대 한국 정부나 어느 기관 단체들도 이들 선열들을 공식적으로 추모를 하지않고 있었으며, 묘역에 안장된 선열들의 약 97%가 무연고자임을 파악하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방치된 사실에 대해 중가주 해병대 전우회의 김명수 회장을 주축으로 남가주 LA등 각 지역 해병대 전우회와 함께 이곳에 방치된 선열들의 애국충정을 조금이나마 기억하기 위해 추모식을 개최하여 왔으며, 2021년 올해로 참배 30주년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지금까지 매년 광복절과 메모리얼 데이를 맞아 년 2회로 추모행사를 가졌기에 올해로 참배 30주년이며, 추모 회수로는 60회가 됩니다. 이같은 추모제는 최근 들어 김좌진장군기념사업회와 미주3.1 여성동지회와 샌프란시스코광복회도 함께 타지역 재미해병대전우회등 여러 단체의 열성적인 참여로 더욱 뜻있게 지내고 있는 것입니다.

 

이같은 추모행사는 누구 개인의 행사나 어느 단체의 행사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행사이며, 우리 후손들이 섬겨야 하는 우리들의 일이라고 생각됩니다. 이곳에 영면한 분들이 바로 조국 대한민국의 독립을 위해 희생하신 우리들의 이민 선조이며 우리들과 같은 한 핏줄이기 때문입니다. 그러하기에 애국선열님을 섬기는 추모식은 앞으로도 계속 이어 갈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재미 중가주 해병대 전우회, 중가주 (리들리, 다뉴바) 애국선열 추모위원회 회장 김명수, 수석부회장 이문석 외

회원일동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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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추린 중가주 지역의
미주 한인 이민사적 의의

미국 캘리포니아주 중가주 지역(Central California)은 미주 한인 이민사에서 하와이주 다음으로 초기 이민 선열들이 많이 영면하고 있는 성역일뿐 아니라 미주 이민 독립운동사에서 매우 중요한 역사를 지닌 곳입니다.

 

일제 강점기시절 조국에서 1919년 3월1일 ‘만세운동'으로 전국적으로 독립운동이 일어났습니다. 하지만 그 이듬해 1920년 3월1일은 어디에서도 독립운동을 볼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유일하게 미국 캘리포니아주 중가주 지역 리들리(Reedley)와 다뉴바(Dinuba)에서 3.1운동 만세소리가 울려 펴졌습니다. 

 

리들리 인근 다뉴바에서 1920년 3월1일 정오 이 지역 한인선조들이 세계 최초로 3.1운동 1주년 기념 퍼레이드를 벌여 미국사회에 ‘대한민국이 독립국'임을 만방에 알렸던 것입니다. 당시 이지역 신문인 Dinuba Sentinel은 “한인들이 아침 10시부터 밤까지 독립운동 행사를 벌였는데 시가행열에 350명이상이 참가했다"면서 시가행진 사진을 게재하면서 대대적으로 보도했습니다.

 

당시 이 지역의 모든 한인여성들은 흰옷으로 정장하고 남자들도 정장하여 도열한 가운데 대한제국 군인 복장을 한 대표가 말을 타고 독립선언서을 낭독하고 수십 대의 자동차와 도보로 태극기와 성조기를 휘날리며 시내 중심가에서 시가행진을 하여 미 주류사회에 한국이 독립국임을 알렸던 것입니다.

 

당시 이 지역에 거주한 한인들이 500명 내외로 당시 미인구 센서스 통계로 볼 때 350여명이 시가 행렬에 참가했다는 것은 당시 이 지역에 거주하던 한인들이 거의 모두 참가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당시 북가주의 윌로스의 한인비행학교 조종사가 당시 시가행진에 축하 비행하려고 비행하여 오다가 기상 악화로 프레스노까지 상공에서 다시 회항해 다뉴바 상공에는 이르지 못했습니다.

 

한편, 리들리에서는 1921년에 40주년을 리들리 타운퍼레이드(Reedley Town Parade)에서 한미수교(1882)를 축하하는 한인 꽃차를 출품해 한국이 1882년에 미국과 수교조약을 맺은 독립국가임을 과시하였습니다.

 

중가주지역에 한인이 처음 도착한 것은 1905년으로 추산되며 1905년에 프레즈노의 한인 노동자 22인이 공립협회지회를 설립하였으며 1914년에는 대한인국민회(KNA) 지방회가 조직되었습니다.

 

1920년대 중가주 리들리와 다뉴바 지역은 대한인국민회 이외 대한여자애국단을 포함해 대한여성 구제회등을 포함한 애국단체들이 활동하던 유서깊은 지역입니다. 당시 이 지역은 과일 단지로 유명해 하와이 사탕수수 농장에 이민왔던 선조들이 대륙으로 이주해오면서 이 지역에 모이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이 지역에서 한인 김호(미국명: 찰스 호 김), 김형순이 설립한 ‘김 브라더스'(Kim Brothers)가 큰 사업체로 등장하면서 미주 이민사 최초의 ‘백만장자'로 독립운동에 크게 기여했습니다.

 

특히, 고국에서 3.1운동이 일어난 후 중가주 지역은 독립운동의 중요한 역할을 하였으며 독립자금의 중요한 공급처가 되었습니다.

 

이 지역에서 활동했던 많은 선조이민들은 주로 총각이나 홀아비들이 많았으며, 과일농장에서 일한 돈으로 의식주 이외 대부분을 독립자금으로 기부하다가 쓸쓸하게 돌아가시고 이곳 리들리와 다뉴바 공동묘지에 잠들었습니다. 이곳에 안장된 선열들의 묘들이 나란히 묻혀 있습니다.

 

이는 ‘김 브라더스'의 대표인 김호 선생이 쓸쓸히 돌아가신 선열들을 위해 미리 묘지를 사두었기 때문입니다.

 

그후 세월이 흘러 조국이 독립되었으나 이곳 선열들의 묘역은 아무도 찾아주지 않았습니다. 

 

아무도 찾아주지 않는 이 성역을 1992년부터 중가주해병대전우회의 김명수 회장을 포함한 각 지역 해병전우들과 지방 유지들이 묘역 성역화 작업에 나섰습니다.

그리고는 1992년부터 매년 메모리얼데이와 광복절에 리들리묘역과 다뉴바 묘역에 잠든 선조들의 혼을 달래주었던것입니다.

 

앞으로도 변함없이 추모식은 이어갈것입니다.

 

감사합니다.

김좌진장군기념사업회 미주본부 회장 권욱종/이사장

변홍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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